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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씨어터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홈씨어터는 집에서 영화를 보기 위한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제품이 바로 홈씨어터입니다. 홈씨어터는 비디오와 오디오로 기능 구분이 가능한 제품이며, 오디오기능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는 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홈씨어터의 또 다른 장점이죠. 자, 그럼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오디오의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재즈 명반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제는 엑스캔버스 홈씨어터의 음악 전문 블로거 루이스피구님이 추천 해 주신 글이라는 것쯤은 모두들 알고 계시겠죠? ^^ 그럼, 이제부터 저와 함께 보사노바의 리듬으로 빠져 보실까요? (스칼렛 홈씨어터 블로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트리뷰트 앨범이라고 해서 흔히 떠올리는 보사노바 앨범을 예상한다면 <Casa>는 의외의 선곡에 틀림없이 당황스러워 할 작품이다. 이 앨범에는 'Wave'나 'How Insenstive', 'Desafinado' 같은 조빔의 대표곡들은 물론 그 유명한 'Girl From Ipanema' 역시 찾아 볼 수 없다. 그래도 선곡만으로 <Casa>를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조빔은 위에 언급한 곡들 외에도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들을 엄청나게 많이 써냈지 않은가. 하지만 <Casa>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구성을 살펴본다면 앨범을 구입한 이들은 또 한번 놀랄지도 모르겠다.

몇몇 곡에서 조빔의 장남인 파울로 조빔이나 브라질의 대표적인 소울가수 에지모타, 기타연주의 대가 루이스 브라질이 참여하고 있긴 하다만 기본적으로 첼로와 피아노 그리고 보컬. 이걸로 끝이다. 단순하다 못해 허전해 보이기까지 한 구성은 조빔을 추모하는 여러 유명한 브라질 아티스트들의 참여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일정부분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 역시 그랬으니까. 물론 실망은 <Casa>를 들어보기 전까지만이었다만.

물론 심플한 구성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보사노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을 보니 이제서야 궁금증이 해소된다. 그래. <Casa>는 단순히 조빔의 유명한 넘버들을 이름난 게스트들의 참여로 채워놓은 앨범이 아닌 자신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리면서 재해석 해낸,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는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Casa>를 일반적인 트리뷰트 앨범으로 한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앨범에 참여한 세 인물을 중심으로 <Casa>를 잠시 살펴보자면 거의 재즈 트리오에 가까운 구성이다. 일반적인 모던 재즈 트리오의 구성인 피아노, 드럼, 베이스가 아닌 리듬 파트가 제외된 피아노와 첼로, 보컬로 이루어진 악기구성. 놀랍게도 이 작품을 오래 전부터 기획하고 직접 제안했던 건 사카모토가 "천상의 목소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보컬리스트 파울라 모렐렌바움이라고 한다.

이 말은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전반적으로 파울라 모렐렌바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조빔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파울라 모렐렌바움이 조빔의 밴드에서 활동했던 것을 상기시켜 본다면 보컬을 담당하는 파울라의 비중이 다른 악기파트 못지않게 크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Casa>에서는 기존 조빔의 음악에서 기타와 퍼커션이 차지하던 공간을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와 쟈키스 모렐렌바움의 첼로연주로 넉넉하게 메우고 있다. 구성이나 편곡을 포함한 거의 모든 부분을 쟈키스 모렐렌바움이 담당하고 있다만 그래도 조빔의 생가에서, 직접 조빔이 연주하고 녹음했던 바로 그 피아노에서, 사카모토가 조빔의 곡을 연주 하는 부분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포르투갈어로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Casa>가 왜 앨범 제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Casa' 란 바로 조빔의 집을 뜻한다.
 
왼쪽부터 Ryuichi Sakamoto/ Paula Morelenbaum/ Jacques Morelenbaum

왼쪽부터 Ryuichi Sakamoto/ Paula Morelenbaum/ Jacques Morelenbaum


 사카모토는 이 작품에서 조빔의 스타일로 연주하고 있다. 마치 <Getz/Gilberto> 앨범에서 개성 강한 스탄 겟츠와 조앙 질베르토의 뒤에서 피아노로 조율하고 있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처럼. 듣고 있으면 단번에 조빔이 생각나는 'Vivo Sonhando'에서 사카모토는 모렐렌바움 부부 사이에서 조빔의 피아노로 그를 반추한다. 물론 불길한 느낌이 드는 'Sabia' 같은 곡에서는 사카모토 특유의 '논 레가토(non legato)' 주법의 반복으로, 잔뜩 성을 내고 활을 켜는 듯이 거칠게 연주하는 쟈키스 모렐렌바움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하지만.

이 앨범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사카모토가 조빔의 곡을 연주 하던 중 집으로 돌아온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아들 파울로 조빔은 "누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지는 몰랐지만 아버지의 연주 그대로였다"며 감동했다고 한다. 파울로 조빔은 이들의 연주를 듣는데 그치지 않고 'O Amor em Paz'와 'Esperança perdida' 에 기타로 직접 참여하는데, 조빔의 곡들이 연주되자 가정부는 아름다운 선율에 세탁을 멈추고 음악을 들으며 "주인이 되살아났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한다.


Ryuichi Sakamoto & Morelenbaum² / O Grande Amor

위에 언급된 곡들외에도 <Casa>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향연이다. 에지모타와 파울라 모렐렌바움의 호흡이 인상적인 왈츠풍의 'Imagina'와 조빔이 생전에 자신의 아내에게 바치는 연주곡 'Tema Para Ana', 그리고 프랑스의 위대한 음악감독 미셸 르그랑 (Michel Legrand, 필자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다)에 대한 헌정곡인 'Chanson Pour Michelle' 외에도 멋진 곡이 너무나도 많다. 모렐렌바움과 사카모토의 연주는 "조빔의 곡은 그 노래가 그 노래 같다". "보사노바 그거 말랑말랑한 배경음악용 노래 아닌가" 라고 하는 듯한 비아냥을 가볍게 무시한다. 리듬마저도 소외시키며 조빔의 음악에서 가장 기본적인 골격을 이루는 멜로디에 초점을 맞춘,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며 조빔을 재조명한 음악. 화려하게만 비춰졌던 조빔의 뒷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듯한 작품이 바로 <Casa>다.

<Casa>는 차갑고 투명한 음악이다. 한겨울에 들으면 온몸의 피가 꽁꽁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야말로 압권. 그래서 이 앨범은 여름 보다는 가을에, 가을 보다는 겨울에 듣기 더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무섭게 몰아치며 한기(寒氣)를 내뿜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산들산들 여유 있는 리듬에 맞춰 멜랑꼴리를 선사한다. 쓸쓸함과 차가움에서 느껴지는 매력 뿐만이 아니라 차가움 뒤에 맛볼 따뜻함마저도 고려한 듯한 느낌이 드는 앨범. 마치 길고 긴 겨울 뒤에 따뜻한 봄이 오듯이, 그리고 기나긴 밤이 이어진 후에 뜨는 해가 더 밝아 보이 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겨울의 낭만이며 또 아름다운 추억이다. 해뜨기 직전의 리우데자네이루 항구가 찍힌 앨범 커버만큼이나 멋진 음악이다.

루이스피구 (음악전문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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