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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주로 어떤 영화를 보시게 되나요? 홈씨어터로 즐기는 영화는 소리도 크고 액션도 화려해야 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간혹 아주 잔잔하지만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려주는 영화도 볼만하죠. 엑스캔버스 홈씨어터 블로그의 영화 전문 블로거로 참여하고 계신 신어지님께 그런 잔잔한 영화 한편을 소개해드립니다. (엑스캔버스 홈씨어터 블로그)

한마디로 일본 상업영화의 본때를 착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결말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야기임에도 지루함 없이 차곡차곡 진행하다가 결국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놓고야 말더군요. 뭔가 독창적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원했다면 'TV 연속극과 다를 게 뭐냐'며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관한 메시지와 감동을 선사하는 확실한 2시간을 원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영화가 될 수 있겠습니다. 영화학이나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 상업영화 특유의 보수적인 가치관이 다시 한번 재생산되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만 워낙 원초적인 인간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이라 특별한 거부감을 갖기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애초에 영화란 학문의 대상이기 이전에 관객과의 소통이 우선이기도 하고요. 실컷 재미있게 보고 눈물까지 뺀 영화를 놓고 욕하면 벌받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낙향하여 납관하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가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는 설정은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없는 '상업적 고려에 의한 레시피'입니다. 다이고가 대도시에서 하던 일이 은행원이었든 막노동꾼이었든, 아니면 야쿠자였든 영화의 핵심 내러티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연주했고 또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기까지 노력을 해왔던 인물이라는 설정 덕분에 다이고는 관객들 앞에서 자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작은 첼로를 품에 안고 4개의 굵은 현을 켜며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곤 합니다. 날도 더운데 논두렁 위에서 첼로 연습을 하는 삽입 장면은 그야말로 80년대 TV 드라마 <에어 울프>의 클리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멀쩡한 집 안을 놔두고 왜 밖에 나가서 그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물론 손이 굳어서 불편하더라도 감독이 시키면 해야죠) 그래도 뭐 보기 좋고 듣기에도 나쁘지 않으니 그것으로 장땡입니다.


<굿' 바이>의 빼와 살이 되고 있는 부분은 역시 납관일을 배우고 또 '너무나 근사하게 해내는' 과정입니다. 우리나라 장례 예식 가운데에도 염을 하는 과정이 있긴 합니다만 일본의 납관 예식은 유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죽은 자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복원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이더군요. 마지막에 죽은 이의 손을 모아주며 얼굴을 바라보는 동작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얼떨결에 취직을 하게 된 초짜 납관사 다이고는 교습용 DVD 제작에 시체 대역으로 출연하고 죽은 지 2주나 된 독거 노인의 시체를 처리하는 등 고생을 하지만(그 과정에서 관객들에게는 큰 웃음을 주지요) 납관 일이 계속되면서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하다 보니 그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굿' 바이>의 최종 목적지는 다이고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버리고 애인과 가출해버린 무정한 아버지와의 재회죠. 다이고가 굳이 납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객지에서 홀로 숨을 거둔 아버지와의 만남은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옛날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은 돌을 건네주곤 했다'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끌어들이며 얼굴도 기억나지 않던 죽은 부모의 마음이 다이고와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합니다. 수 백 억을 들여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방에 널리고 널린 자그마한 돌맹이 하나로 흔들어놓는 일본 상업영화의 저력은 과연 놀랍기만 합니다. 강가의 조약돌에 담긴 등장 인물들의 진심은 죽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그리고 또 그 아래 자식들에게 대대로 전달된다는 것이죠. 납관사 사장과 다이고가 복어 정자 주머니를 구워먹으며 "식물과 달리 동물은 다른 동물을 먹는다. 너무 맛있지, 미안하게도."라던 대화도 같은 맥락을 부연해주는 에피소드라 하겠습니다.


주연 배우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봤는데 오랜만에 모토키 마사히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더군요. 소년대 출신의 십대 아이돌 스타로 출발하여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팬시 댄스>(1989)와 <으랏차차 스모부>(1992)을 통해 배우로서의 전업에 성공한 경우죠.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또 한 명의 스타가 되었지만 작품을 위해 기꺼이 망가지는 헌신적인 연기는 역시나 보기 좋더군요.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0년작 <비밀>(2000)에 출연했던 히로스에 료코가 다이고의 아내로 등장하고 있는데 덕분에 <굿' 바이>는 <철도원>(1999)의 감동과도 감히 비교될 만한 작품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외 야마자키 츠토무를 비롯해서 주요 배역들이 모두 이름은 기억 못해도 얼굴만은 낯익은 배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음악은 웬만한 감독이나 배우 보다 더 유명한 히사이시 조입니다. 외양은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블럭버스터급 캐스팅에 무엇보다 감동만큼은 블럭버스터급으로 착실하게 선사해주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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